한국 인디 음악 입문 지도: 어디서부터 들어갈까
"한국 인디 좋아해요"라는 말은 사실 정보량이 거의 없습니다. 그 안에 서로 전혀 안 닮은 음악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디를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씬으로 보고, 어디로 들어가면 좋은지 지도를 그려봤습니다.
먼저: '인디'는 소리가 아니라 방식이다
인디(indie)는 independent, 즉 대형 기획사·유통사에 속하지 않고 만드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정한 소리를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디 안에는 시끄러운 록도, 조용한 포크도, 세련된 알앤비도, 실험적인 전자음악도 다 들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사정이 하나 더 붙습니다. '인디'가 오랫동안 어쿠스틱한 잔잔한 노래를 뜻하는 말처럼 쓰여왔습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그 결이요. 그래서 "인디는 취향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사실 그 좁은 이미지 하나만 접해본 경우입니다. 지도를 넓히면 대개 어딘가에 걸립니다.
소리 결로 나눈 다섯 갈래
레이블이나 세대가 아니라 귀에 들리는 결로 나누는 편이 입문에는 실용적입니다. 각 갈래마다 대표적인 이름을 하나둘 적어두었으니, 익숙한 이름이 있는 쪽부터 시작하세요.
갈래 1 — 밴드 사운드, 라이브에서 완성되는 쪽
기타·베이스·드럼의 합이 중심인 음악입니다. 음원보다 공연장에서 훨씬 커지는 종류라,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자주 보이는 이름들이 여기 있습니다. 혁오, 잔나비, 새소년처럼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팀들이 이 갈래의 입구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훨씬 거칠고 큰 소리를 내는 팀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갈래 2 — 몽환적이고 질감 중심인 쪽
멜로디보다 소리의 표면이 먼저 들리는 음악입니다. 기타에 잔뜩 걸린 이펙터, 넓은 잔향, 가사가 잘 안 들리게 묻힌 보컬. 슈게이즈·드림팝의 문법을 한국어로 하는 쪽이고, 실리카겔이 최근 이 방향의 대표적인 통로가 됐습니다. 로파이나 앰비언트를 좋아한다면 이쪽이 가장 자연스러운 연결입니다.
갈래 3 — 가사가 주인공인 쪽
편곡은 최소한으로 두고 말을 앞에 세우는 음악입니다. 한 곡이 짧은 소설처럼 읽힙니다. 이랑, 김사월 같은 이름들이 여기 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장기하와 얼굴들이 한국어 발화의 리듬 자체를 음악으로 만든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가사를 곱씹는 감상을 좋아한다면 여기가 본진입니다.
갈래 4 — 세련되고 도시적인 쪽
알앤비·소울·시티팝의 감각을 가져온 계열입니다. 프로덕션이 매끈하고 코드가 재즈적입니다. 검정치마는 이 결과 밴드 사운드 사이를 오가며 인디의 대중적 입구 역할을 해왔고, ADOY는 신스팝 쪽에서 비슷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해외 인디팝을 듣던 귀에는 이쪽이 가장 이질감이 적습니다.
갈래 5 — 조용하고 서정적인 쪽
흔히 '인디'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결입니다. 어쿠스틱 기타, 담백한 보컬, 일상적인 가사. 진입 장벽이 가장 낮고 그래서 가장 많이 소비됩니다. 다만 이 갈래만 듣다 보면 서로 비슷하게 들리는 시점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가 위의 다른 갈래로 넘어갈 때입니다.
지금 좋아하는 팀이 어느 갈래인지 하나 정하고, 바로 옆 갈래로만 한 걸음 옮겨보세요. 5번이 좋았다면 3번으로, 1번이 좋았다면 2번으로. 한 번에 반대편으로 건너뛰면 대개 실패합니다.
새 이름을 계속 찾아내는 세 가지 경로
인디는 알고리즘 추천이 특히 약한 영역입니다. 재생 수가 적어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직접 쓰는 경로가 여전히 유효합니다.
1. 레이블을 따라간다
인디 레이블은 취향이 뚜렷합니다. 한 팀이 마음에 들었다면 같은 레이블의 다른 아티스트가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스트리밍 앱에서 앨범 정보를 열면 발매사가 적혀 있고, 그 이름으로 검색하면 소속 아티스트 목록이 나옵니다. 아티스트 한 명당 새 이름 서너 개가 딸려오는 셈이라 효율이 좋습니다.
2. 페스티벌 라인업을 읽는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같은 행사의 라인업은 사람이 고른 큐레이션 목록입니다. 헤드라이너 말고 아래쪽 작은 글씨를 보세요. 거기에 아직 안 알려진 팀들이 있고, 페스티벌 측이 골랐다는 건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뜻입니다. 공연을 안 가더라도 라인업만 읽고 검색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3. 시상식 후보 목록을 훑는다
한국대중음악상 같은 시상식의 수상작보다 후보 목록이 훨씬 쓸모 있습니다. 장르별로 나뉘어 있어서 관심 있는 갈래만 골라 볼 수 있고, 매년 갱신됩니다. 한 해치 후보 목록만 훑어도 처음 보는 이름을 열 개 넘게 건집니다.
세 경로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름이 가장 좋은 후보입니다. 레이블 카탈로그에도 있고, 페스티벌 라인업에도 있고, 시상식 후보에도 있다면 아직 안 알려졌을 뿐 완성도는 검증된 팀입니다. 이 방식은 다른 나라 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더 일반적인 방법은 숨은 명곡 디깅에 정리해두었습니다.
첫 달을 보내는 방법
이름을 잔뜩 모아두고 한 곡씩 훑으면 대부분 기억에 안 남습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던 방식을 적어둡니다.
- 위 다섯 갈래 중 하나를 고릅니다. 여러 개 동시에 하지 않습니다.
- 그 갈래에서 아티스트 세 팀만 정합니다.
- 각 팀의 앨범 한 장씩을 통으로 듣습니다. 대표곡만 듣지 않습니다. (앨범 감상법)
- 세 팀 중 가장 오래 남은 하나를 정하고, 그 팀의 레이블과 참여 크레딧을 따라 다음 세 팀을 뽑습니다.
한 달이면 여섯 팀, 앨범 여섯 장입니다. 적어 보이지만 '좋아하는 한국 인디 밴드가 누구냐'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백 곡을 스쳐 듣는 것보다 확실합니다.
정리
한국 인디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대개 취향이 안 맞아서가 아니라, 다섯 갈래 중 한 갈래만 접해봤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어쿠스틱이 지루했다면 몽환적인 쪽이나 밴드 쪽을, 밴드가 시끄러웠다면 가사 중심 쪽을 열어보세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팀을 찾았다면 그 팀에서 멈추지 말고 레이블과 페스티벌 라인업으로 한 칸씩 옮겨가세요. 그게 씬을 자기 지도로 만드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