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팝 입문: 40년 전 일본 음악이 지금 다시 들리는 이유

글 · Joon (tunov 운영자) · 2026년 8월 3일 · 읽는 데 약 9분

유튜브를 켜두고 있으면 어느 순간 자동재생에 끼어드는 곡들이 있습니다. 일본어 보컬에, 반짝이는 신스에, 이상하게 매끈한 베이스. 대개 시티팝입니다. 40년 전 음악이 왜 지금 이렇게 들리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들어가면 좋은지 정리했습니다.

시티팝은 장르라기보다 '기분'에 가깝다

시티팝(City Pop)은 엄밀한 음악 장르 규정이 아닙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 만들어진,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각의 팝을 나중에 묶어 부르는 이름에 가깝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뉴 뮤직'이라고 불렸고, 시티팝이라는 말이 지금 같은 의미로 굳어진 건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그래서 시티팝 안에는 서로 꽤 다른 음악이 섞여 있습니다. 재즈 퓨전에 가까운 것, 디스코에 가까운 것, 잔잔한 발라드에 가까운 것이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공통점은 소리의 구조보다 분위기입니다. 밤, 도시, 자동차, 해변, 그리고 약간의 거리감.

귀로 알아채는 시티팝의 특징

설명보다 소리의 신호를 몇 가지 알아두면 훨씬 빨리 구분됩니다.

1. 베이스가 앞에 나와 있다

시티팝에서 가장 먼저 들리는 건 대체로 베이스입니다. 뒤에서 받쳐주는 게 아니라 멜로디처럼 움직입니다. 이건 당시 일본 스튜디오 세션 연주자들의 수준이 대단히 높았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펑크(funk)와 재즈 퓨전을 소화한 연주자들이 팝 녹음에 그대로 투입됐기 때문입니다.

2. 코드가 팝치고 복잡하다

흔한 팝이 세 개, 네 개 코드로 도는 데 비해 시티팝은 재즈에서 가져온 화성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서 "밝은데 어딘가 쓸쓸하다", "신나는데 눈물 날 것 같다"는 인상이 생깁니다. 시티팝을 설명할 때 사람들이 자주 쓰는 '행복한 우울'이라는 표현은 대부분 이 화성에서 옵니다.

3. 공간이 넓고 잔향이 길다

1980년대 일본 스튜디오 녹음 특유의, 소리를 넓게 벌려놓는 믹싱입니다. 게이티드 리버브가 걸린 스네어, 크게 벌어진 코러스, 반짝이는 일렉트릭 피아노(로즈). 이 조합이 시티팝을 즉시 알아채게 만드는 질감입니다.

한 줄 요약

베이스가 노래하고, 코드가 씁쓸하게 빛나고, 소리가 넓게 퍼진다면 십중팔구 시티팝 계열입니다.

왜 지금 다시 들리게 됐나

시티팝의 재발견은 누가 기획한 일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인터넷 커뮤니티가 우연히 만든 사건에 가깝습니다. 경로가 대략 이렇습니다.

  1. 베이퍼웨이브·퓨처펑크의 샘플링 — 2010년대 초중반, 인터넷 기반의 이 장르들이 일본 옛 팝과 광고 음악을 대량으로 샘플링했습니다. 원곡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2.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 — 2017년 무렵부터 타케우치 마리야의 「プラスティック・ラブ(Plastic Love)」 업로드가 전 세계 사용자에게 이유 없이 추천되기 시작했습니다. 앨범 커버가 아닌 한 장의 흑백 사진이 걸린 그 영상은 수천만 회가 재생됐습니다.
  3. 숏폼 유행 — 2020~2021년에는 마츠바라 미키의 「真夜中のドア / Stay With Me」(1979)가 틱톡을 통해 퍼지며, 발매 40여 년 만에 각국 스트리밍 차트에 올랐습니다.

세 경로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음악을 홍보하지 않았다는 것. 유통도, 광고도, 언어도 없이 소리만으로 퍼졌습니다. 음악 추천에서 종종 잊히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곡이 안 들리는 이유는 대개 곡의 문제가 아니라 경로의 문제입니다.

입문 순서: 세 갈래로 나눠 들어가기

시티팝을 '대표곡 플레이리스트'로 한 번에 훑으면 다 비슷하게 들려서 금방 질립니다. 결이 다른 세 갈래로 나눠 들어가는 편이 훨씬 오래갑니다.

갈래 A — 밝고 그루브한 쪽 (가장 무난한 시작)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에서 시작하면 실패가 적습니다. 1980년의 「RIDE ON TIME」은 시티팝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이미지 거의 전부를 담고 있고, 1982년 앨범 FOR YOU는 여름·바다·드라이브라는 클리셰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줍니다. 그다음 안리(杏里)의 「悲しみがとまらない」로 넘어가면 디스코 쪽 결이 열립니다.

갈래 B — 쓸쓸하고 매끈한 쪽 (야경 계열)

타케우치 마리야의 「プラスティック・ラブ」와 마츠바라 미키의 「真夜中のドア」가 여기 있습니다. 두 곡 모두 밝은 편곡 위에 가사는 이별과 거리감을 말합니다. 이 어긋남이 시티팝 특유의 감정입니다. 야경, 새벽, 혼자 있는 시간과 잘 붙습니다.

갈래 C —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쪽 (깊이 파고들 때)

오오누키 타에코(大貫妙子)는 같은 시기의 음악이면서도 훨씬 유럽적이고 서늘합니다. 히트곡 중심으로 듣던 귀에는 처음엔 밋밋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시티팝을 오래 듣다 보면 대개 이쪽으로 옵니다. 여기까지 오면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 주변의 신스팝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디깅 요령

마음에 든 곡을 찾았다면 편곡자와 세션 연주자 이름을 확인해보세요. 시티팝은 소수의 스튜디오 인력이 수많은 앨범에 겹쳐 참여한 씬이라, 사람 이름 하나를 따라가면 아직 안 들어본 앨범이 줄줄이 나옵니다. 아티스트 이름보다 크레딧이 훨씬 효율적인 지도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숨은 명곡 디깅에 정리해두었습니다.

시티팝이 좋다면 다음은 어디로

시티팝만 계속 들으면 몇 달 안에 반복이 옵니다. 결이 이어지는 곳들을 적어둡니다.

정리

시티팝은 특정한 소리라기보다 특정한 시간대의 기분입니다. 도시의 밤, 조금 지친 상태, 그런데도 아직 괜찮은 마음. 40년의 시차에도 이 감각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게 이 음악이 지금 다시 들리는 진짜 이유일 겁니다. 대표곡 열 곡을 훑고 끝내지 말고, 위 세 갈래 중 마음에 걸리는 쪽을 하나 골라 깊이 들어가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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